
나는 유년시절부터 이상적인 집을 그리며 몽상에 젖는 시간이 많았다. 그 시절 나의 스케치북에는 가족이 모두 평온하게 모여 살 수 있는 집의 평면도가 자주 그려졌는데, 돌이켜보면 불안정한 주거 환경 속에서 안락함에 대한 결핍이 이상적인 집에 대한 몽상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내 생애에서 집은 행복하고 안락한 순간들보다는 늘 불안정하고 탈출하고 싶은 공간으로 기억된다. 망원동에서 우연히 발견한 <행복이가득한집>이라는 다세대 주택의 간판은 나의 성장과정의 경험과 맞물려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대략 4층 정도 되는 주택 입구 정면에 큼직한 대리석으로 붙어 있는 이름은 동경과 좌절이 교차하는 무수한 질문을 상기했다. 주택의 간판과 기묘하게 결합된 이오니아식 주두를 보며 ‘이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이 간판처럼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반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