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사망법안이라니, 엄청나게 자극적인 제목이다. 마치 실제로 시행될 법안마냥 ‘가결’이란 단어로 제목을 마무리 짓는다. 책 제목을 보자마자 이 책은 꼭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소설이든 영화든 현실적인 내용을 선호하는 편인데, 이 책은 현대 사회에서 겪게되는 가족 구성원의 이기적인 삶의 형태들을 다루고 있어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현재 삶에 직면한 문제들을 끄집어내 그 다층적인 측면들을 덤덤하게 담아내는 작품들은 나의 생각의 범위를 넓혀주고 시간이 흘러도 기억에 남는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를 어느 한 가족의 시점으로 풀어낸 가키야 미우 소설 <70세 사망법안, 가결>도 기억에 남을만한 작품이다.

모든 국민은 70세가 되는 생일을 기점으로 30일 안에 죽어야 한다. 100세를 사는 시대에 노인인구는 갈 수록 늘어가는데, 저출산으로 노인을 부양할 젊은이들의 숫자는 줄어든다. 결국 고령화 사회를 타계할 극단적인 방법은 모든 사람이 같은 나이에 죽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위적이지만 노인 인구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이 가능하다. 과연, 이 비윤리적인 법안이 국가 재정을 안정시키고 가난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사는 젊은 세대들에게 삶의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여기 그 문제를 고스란히 떠안은 가족이 있다.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 도요코(55세), 대기업 직장인 도요코의 남편 시즈오(58세), 노인 요양원에서 일하는 큰 딸 모모카(30세), 일류대학을 나와 좋은 회사에 취직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3년 째 취준생인 마사키(29세) 그리고 2년 뒤에 죽어야하는 시어머니. 이 가족은 한 집에 산다.
‘며느리, 엄마로만 존재하는 도요코’
한 집에 살면서 가장 팍팍한 삶을 사는 건 거동을 못하는 시어머니를 모시는 도요코다. 시어머니가 호출하면 낮, 밤 없이 심지어 새벽에도 잠에서 깨 수발을 들어야 한다. 식사는 물론이고 귀저기를 가는 것까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시어머니의 손과 발이 도요코인 샘이다. 가족 구성원 어느하나 도요코를 도와주지 않는다. 심지어 시어머니의 자식들인 남편은 물론 두 딸조차 어머니의 병수발을 나몰라라 한다. 일을 하지 않는 가정주부라는 이유로 집안의 모든 일과 시어머니 수발은 당연하게 그녀의 차지가 되었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정성스런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불만이 가득해 늘 구박하기 일수다. 도요코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급기야 시어머니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고, 자신도 얼마남지 않은 삶을 자유롭게 보내고 싶다. 가정주부에게 자유란 곧 집을 나가는 것이다.
이와중에 남편 시즈오는 회사를 그만두고 직장 동료와 세계일주를 떠나겠다고 선포한다. 독박 병수발을 하는 것도 서러운데, 모든 집안일은 물론 삶이 얼마남지 않은 어머니까지 부인에게 맡기고 떠나는 남편이라니. 대체 가족이란 무엇이며, 여성의 삶이란 왜 이리 억울한 일을 당해야하는 것일까.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다. 자유가 없는 삶은 끔찍하다. 나 같으면 진작 독립을 선포했을 것이라 상상했지만, 막상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주어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요코는 더이상 참을 수 없다. 삶이 70세로 제한되니 없던 용기도 생긴다. 가족들 모르게 집을 나가 독립적인 삶을 꾸릴 결심을 하고 시행에 옮긴다.
‘모두 자신만 생각한다.’
막내 아들 마사키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채 방안에서만 생활한다. 따박따박 가져다 주는 엄마의 밥상과 안락한 집이 있으니 삶에 대한 간절함이 없다. 인터넷과 텔레비전이 세상과 유일한 소통창구다. 그런데 늘 밥을 가져다 주는 엄마가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할머니는 소리를 지르며 엄마를 찾는다. 그제서야 마사키는 사태를 자각한다. 엄마가 가출했다. 할머니를 돌본적도, 집안일을 해본적도 없는 마사키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다들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아버지는 회사생활에서 이제 막 자유가 되어 세계일주를 떠나는 중이란 이유로, 누나 모모카는 요양원의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마사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마사키는 아버지와 누나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결국 자신 또한 다른 가족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엄마의 역할을 대신하며, 조금씩 움츠린 마음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도요코가 없어도 집안은 잘만 돌아간다.’
가족들은 모두 각자의 삶이 있다. 그런데 도요코만 자신의 삶이 없었다. 타인을 위한 자신만 존재했을 뿐이다.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늘 불만만 많은 여자가 되어갔다. 한때 독립적이고 당당했던 젊은 시절의 자신이 사라진 것이다. 도요코가 며느리, 엄마, 아내의 역할을 버린 순간, 가족들은 점차 그녀의 공백에 책임을 깨닫고 시어머니를 돌보고 집안일에 신경쓰기 시작한다. 가족들은 70세 사망법안과 도요코의 가출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자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얼마나 무감각했는지 깨닫는다. 노인 부양의 무게, 청년 실업, 가부장적 사회,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점점 살 맛을 잃어 버린 사람들에게 어쩌면 충격요법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가족 구성원의 이기적인 면모가 절정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시어머니가 자식들을 모아놓고 유산 상속 문제를 거론하는 내용이다. 평소 안부조차 묻지 않던 두 딸과 사위들이 유산 분배를 하겠다는 어머니의 호출에 한걸음에 달려온다. 그들은 처음에는 어머니 앞에서 걱정하는 척 가식을 떠는 모습을 보이다가 유산분배가 동등하지 않자 태도가 돌변한다.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자신의 어머니임에도 병수발을 서로에게 떠넘긴다. 그 광경을 시어머니는 바로 코앞에서 지켜본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들이 이제는 자신의 재산에만 관심이 있다.
잔혹한 현실앞에 노인은 고독해지기만 한다.
이 부분은 상속에서 제외된, 며느리 도요코의 시점에서 적나라하게 묘사가 된다. 도요코는 그 광경을 밖에서 지켜보며 비참해할 시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고 동정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극진히 간호해온 사람은 자신임에도 정작 유산분배에서 제외되며, 가족 구성원으로서 소외감을 느낀다. 왜 여자가 결혼할 때는 ‘시집을 보낸다’라 하고, 남자가 결혼할 때는 ‘장가를 간다’라 하지 않던가. 함께 낳은 자식 임에도 남자 집안의 성을 따르는 관례도 여전하다. 진정한 가족으로서 배려보단 명절에는 음식을 하고, 시부모를 모시고 살 때는 집안일을 해주는 ‘가정부’ 쯤으로 취급받는 시대가 우리 어머니 세대에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출가해 남편의 가족으로 편입되지만, 진정한 가족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가부장적 사회의 모순된 지점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렇듯 <70세 사망법안, 가결>은 냉소적인 시선으로 비인간적인 가족들의 면면을 그린다. 때론 가족이란 공동체로 묶여 있어도 고독한 개개인들의 모습이 너무도 씁쓸했다. 그러나 뒤로 갈 수록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며, 상황을 비극적으로 만들기보단 적절한 유머를 구사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결말을 이끌어 간다. 다만, 강한 설정으로 흥미롭게 시작했으나, 뒤로 갈수록 교훈을 주려는 내용의 강박이 느껴졌고, 마무리가 싱겁게 끝이나버린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가장 나이가 많은 시어머니와 가장 나이가 어린 손자 마사키가 마주보고 밥을 먹는 부분이 있다.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와 마주보며 밥을 먹는다고 기뻐하는 시어머니, 그런 할머니를 보고 마사키는 앞으로도 자주 함께 먹어야 겠다고 마음먹는다. 어쩌다 가족이 함께 마주보고 밥을 먹는 그 쉬운 일조차 특별한 날이 되어버린 걸까. 나도 우리 네 식구가 함께 식탁에서 밥을 먹은게 언제인지 기억도 않난다. 조금만 마음을 열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혼밥이 익숙해져 버린 나이가 되어버렸다.